지지난 주 토요일, 기말고사도 끝나고 방학도 한지라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했습니다. 원래 계획했던 장소는 변종하 미술관이었습니다. 토요일에 관람하려면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해서 인터넷을 뒤져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전화를 걸었습니다. 변종하 선생 작고 뒤로 가족들이 자택에서 미술관을 운영한다더니, 정말 가족인 듯한 분이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전시관 수리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아쉬웠지요. 다음에 수리가 끝나면 꼭 찾아가겠노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찾은 곳이 토탈미술관입니다. 평창동이라 집에서도 가까운데다 버스 한 번이면 갈 수 있어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뚫고 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서울옥션을 지나쳐 조금 걸어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돌면 미술관이 바로 보입니다. 토요일이지만 차가 없으면 찾아가기 힘든 곳에 있고 비도 오는 날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었습니다. 무슨 전시를 하는지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갔는데 옳다구나, YBA(Young British Artists)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였습니다.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작가도 있었습니다. 예전 크링 오픈 때 했던 전시에서 만났던 데이비드 바첼러(David Batchelor)와 게리 웹(Garry Webb)입니다. 이렇게 다시 만나면 확실히 작가의 스타일과 이름이 각인되는 것 같습니다.
전시는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주목 받고 있는 영국현대미술작가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고, 미술관 자체의 구조가 독특했기 때문입니다. 입구가 있는 층에서 아래로 내려가게끔 되어 있는 전시장의 구조는 참 신기했습니다. 메짜닌 층도 있었는데, 이 메짜닌 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에는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 커다란 돌을 보니 떠오르는 게 있었습니다. 그건 쌩뚱맞게도 제3땅굴. 군대 있을 때 투어하느라 많이 갔던 제3땅굴이 떠올랐습니다. 돌 위로 촉촉히 흐르는 물을 보니 어쩌면 그렇게도 비슷한지. 어쨌든 자연 환경을 거스르지 않고 조화롭게 건물이 들어앉은 걸 보니 묘했습니다.
내부 사진을 찍기 전에 우선 전시장 관리를 하고 계시는 분께 사진촬영이 가능한지 여쭤봤습니다. 대부분의 미술 전시는 당연히 불가능합니다만, 허용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전에 덕수궁미술관에서 자원봉사를 할 때도 몇몇 작품은 촬영이 가능했습니다. 사진촬영이 가능하다길래 신났지요. 덕분에 여자친구는 찍히기 싫어하는 저를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잘 모르겠는 듯 머리를 긁적이죠. 저는 현대미술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가까이서도 보고 멀리서도 보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열어보이는 작가의 창의성에 감탄합니다.
이건 문제의 작품입니다. 2001년 터너 프라이즈를 받은 마틴 크리드의 작품인, Shit film.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저 여자 조금 뒤에 똥쌉니다.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도 끝까지 다 봤고, 포즈도 따라했습니다. 사실 전 제가 똥싸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그게 어떻게 나오는지도 모르고요. 그런 점에서 타인의 배설 행위를 통해 제 자신의 모습을 유... 아무튼 작가의 의도가 충분히 전해졌습니다. 집에 가져온 안내문에 적혀 있는 작가의 말을 빌자면 이렇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일부분이며, 한편 당신이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직접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첫 번째 (조각)작품이다. 똥을 싸는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고, 그것을 당신의 힘으로 무시할 수는 없다..."
이렇게 토탈미술관에도 첫 발을 내딛고 왔습니다. 진짜 영국출신 작가들만 모아놓은 YBA전시회를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볼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이 전시가 끝나고 다음 전시회 때도 꼭 또 갈 생각입니다. 그때는 비가 오지 않는 화창한 날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