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미술은 마음의 양식이라 생각하기에, 중간고사가 끝나고 조금 여유가 생기니 다시 사치를 조금 부리고 싶었다. 참 고맙게도 학교 도서관에 누가 신청해 놓았는지 흥미로운 책이 있었다. 표지부터가 참 산뜻하지 않은가? ('데미언 허스트' 의 그림이다.) 요즈음 생긴 구조에 집착하는 버릇 때문인지 목차부터 살펴보았다.
욕심 안부리고 제목대로 현대미술만 깔끔하게 다루겠다는 의지가 목차에서 잘 드러나고 있었다. 서문에서도 저자의 겸손함이 보여 일단 첫인상은 무척 좋았다. 후에 다루겠지만, 서문과 일치하는 맺는말도 참 인상적이었다. 이쯤 되면 설레기 마련이다. 어떤 책일지, 무슨 내용을 담고 있을지. 과연 산뜻한 표지만큼이나 읽고나서도 산뜻할 것인지 말이다.
작가는 책을 삼등분해서 독자의 이해를 도와준다. 가장 먼저 1950년대 현대 미술시장이 어떻게 태동하였는지를 다루고 그 다음으로는 1960~70년대의 발전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는 8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양상을 들려준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지만 나는 이 분할이 아주 잘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1950년대 유럽의 미술이 어떻게 뉴욕으로 옮겨왔는지를 '태동기' 에서 다룬 것. 레이건 정부시절 85년 플라자 합의의 도출로 인해 미국 경기가 급격히 되살아나며 미술시장으로 돈이 몰리기 시작하는 양상을 '발전기' 로 다룬 것. 그리고 최근의 골디락스 호황으로 인해 미술시장이 폭발적인 호황을 맞고 있는 양상을 다룬 분할은 아주 적절해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목차는 독자에게는 마치 미술시장의 발전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Tutorial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에는 수많은 작가들이 나온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과 같이 이해하면 외우지 않아도 쉽게 경제상황과 맞물리며 시대에 묻혀가는 느낌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굉장히 많은 정보들을 쏟아내고 있다. 수많은 갤러리들과 작가들, 아트페어의 이름들을 보게 될 것이다. 설마 이걸 다 외우려는 독자는 없겠지. 사실 난 예전에 이런 류의 많은 책들을 읽으며 유명 작가들의 작품 이름과 심지어 출생연도, 그리고 사망한 연도까지 모두 다 외운적이 있다. 물론 머지않아 다 잊어버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전달하려는 의도는 어떠한 팩트들을 전달하기 보다는 뉴욕의 미술시장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미술시장의 미래를 조망하고자 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들에게 어떠한 선견지명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보는것이 나의 견해이다. 한창 폭발적으로 잘나가고 있는 우리 미술시장은 미술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는 나조차도 시장에 기웃거리게 만들었다. 예술에 몸담고 계신 아버지로부터 "다 뜬구름 잡는 소리다." 라는 말을 듣고 고민끝에 포기하기는 했지만, 작년 제대하고 나서 한창 고민이 많을 때 나는 옥션쪽으로 진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물론, 지금은 아버지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취미는 취미에서 머무를 때 멋진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직업이 되면 괴로워진다고 하는 그런 말은 분명 일리가 있다.
갑자기 개인적인 화제로 이야기가 흐른것은 바로 이 책의 말미에 나오는 저자의 생각에 내가 뜻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공자의 말을 빌어 자신이 미술을, 미술 시장을 바라보는 속내를 드러낸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그야말로 폭발적인 미술시장도 알기만 하는 사람들의 투기로 시장이 형성되고 거품이 끼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 증시의 블랙 먼데이와 같은 날이 미술시장에 오지 말란법은 없다. 시장이 건전한 '좋아하는 사람' 들과 '즐기는 사람' 들로 차고 넘칠때가 바로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호황' 이 아닐까.
호황이라 착각하고 어리석게 장래까지 결정지어 버리려 한 아들에게 아버지께서는 "뜬구름 잡는 소리" 라는 의욕을 대번에 꺾는 말씀까지 하시면서 만류하셨던 것이다. 오랜만에 읽은 미술관련 서적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시간을 굉장히 보람차게 사용한것 같아 기쁘다. 내용도 알차고 과감히 추천하고 싶다. 어쩐지 책값이 꽤 비싸다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값만큼 제 몫을 다한다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두께 이상으로 알찬 정보들을 담고 있다. 많은 도판들이 있지만, '저작권' 상 블로그엔 올릴 수 없고 내가 그린 모화로 대신한다.
